📘 1993년 12월 18일 (토) / 날씨: 맑음
세 번째 맞는 주말, 대학로를 다녀오다
오전 1, 2교시에는
〈해외건설시장의 현황〉이라는 주제로
『국토와 건설』 잡지사의 이화영 사장님이 강의를 해주셨다.
학교 도서관에서 늘 접하던 전문 잡지를
직접 만드는 분을 눈앞에서 뵙게 되니
신기하면서도 뜻깊은 시간이었다.
3교시에는 3주차 평가시험이 있었다.
출제 범위는 〈감리업무수행지침서〉.
이번 시험은…100점 예상!
(아무리 못해도 1문제 이상은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시험을 잘 치르고 나니
기분이 저절로 좋아졌다.
오후엔 서울 동숭동 대학로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꿈과 낭만이 살아 숨쉬는 거리라는 말에
은근 기대를 품고 찾아갔지만,
막상 가보니 생각보단 덤덤했다.
약간은 실망스러운 풍경.
해가 지고 막차를 타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잠이 몰려온다.
이만, 오늘의 기록은 여기까지.
<일요일 아침, 다시쓰는 일기>
흰 눈 위를 걷다가, 군 시절의 기억 속으로
아침 8시 반, 눈을 뜨니 숙소는 적막 그 자체.
룸메이트들은 모두 외박을 나가고 나 홀로 남겨져 있었다.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식당으로 향했다.
밤새 싸락눈이 내려 보도블럭 위에 얇게 쌓여 있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서 ‘뽀스락’거리는 소리에 상쾌함이 전해졌다.
눈은 항상 추억을 끌어당긴다. 오늘은 유난히 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분대장이 되고 싶습니다."
1990년 11월 말, 상병으로 진급한 직후였다.
그 시절 ‘상병’은 중대에서 막강한 입지를 가진 계급.
윗선은 깍듯하게 모시고, 아랫사람들은 휘어잡던, 말 그대로 육군의 꽃.
그러나 나는 후임들을 억누르기보다 자상하게 돌보는 리더가 되고자 했다.
그 덕분이었을까, 어느 날 중대 인사계 상사님의 추천으로
분대장 후보에 오르게 되었고, 최종 대대장님 면담까지 이어졌다.
“군 생활 중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뭔가?”
“푸른 견장을 달고, 솔선수범하는 분대장이 되고 싶습니다.”
“좋아. 자네를 분대장 교육대에 보낼 수 있겠군.”
당일 진급한 탓에 후보 자격조차 애매했지만,
그 진심이 통했고, 마침내 분대장 교육대에 파견되었다.
"1등, 상병 김불꽃"
훈련소는 엄격했다.
주특기, 전투지식, 체력, 리더십, 리포트, 질문 태도, 내무생활...
모든 것이 평가 항목이었다.
나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 한 장의 리포트를 쓰더라도,
내 이야기를 서론-본론-결론으로 구조화하고, 사례 중심으로 썼다.
그러던 중, 어느 날 7번 교육생이 지금까지 성적 1등이라는 속삭임을 들었다.
바로 나였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끝까지 집중했다.
수료식 날, “상장 1등. 상병 김불꽃.”
목에 메달이 걸렸고, 공병학교장 명의의 상장이 손에 쥐어졌다.
나는 그 기수의 스타상 수상자가 되었다.
부대로 돌아가며
전화를 걸었다.
“충성! 상병 김불꽃입니다. 스타상 받았습니다.”
“정말 잘했네. 오늘은 쉬고, 내일 복귀하게.”
호랑이 같던 인사계님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느껴졌다.
부대로 돌아갔을 때,
고참도 후임도 모두 축하해줬고, 과자 회식까지 있었단다.
월요일 아침엔 단장, 대대장, 중대장에게 복귀 신고를 했고,
진급해서 곧 육본으로 떠나실 대대장님께선
유종의 미를 함께하게 해줘서 고맙다며 금일봉까지 건네주셨다.
다시 교육원에서
그때의 기억은, 오늘의 나에게 또 하나의 동기를 안겨준다.
이번 교육과정에서도, 그때처럼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
혹시라도 건설부장관상이 내 손에 닿게 된다면,
그건 단순한 ‘상’이 아니라,
내 삶 전체가 걸어온 성실과 책임의 상징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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