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 12월 15일 (수) / 날씨: 맑음
서울지하철 5호선 현장견학 그리고 씁쓸한 소식
오늘은 세 번째 현장견학이 있는 날이었다.
서울지하철 5호선 공사현장을 방문했다.
㈜한양이 시공 중인 정거장과 터널 굴착 갱도 내부를 둘러보았는데,
지하 30m까지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거대한 공간이 펼쳐졌다.
I형 강재들이 구조를 지지하고 있었고, 그 아래에서는 상부 반단면 굴착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지하 공간이다 보니 배기가 원활하지 않아
현장은 연기와 먼지가 자욱했으며, 꽤 답답하고 어두운 분위기였다.
현장 사무실은 영등포의 한 폐병원 건물을 개조해 사용 중이었다.
일반적인 가설 건물이 아닌 만큼 공간 활용은 잘 되어 있었지만,
낡고 으스스한 분위기 때문인지 기분이 묘했다.
감리단과 현장 책임자의 설명을 들으며
지하철 공사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었다.
그런데 견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많은 동료들이 “이런 곳에서는 절대 근무 못 하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무슨 일이든 내게 주어진다면, 일단 닥쳐보고, 부딪히고, 배워보고 싶다.
어렵고 힘들어 보이는 현장일수록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믿는다.
오후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잠시 유선방송을 보다가, 피곤함이 몰려와 침대에서 단잠에 빠졌다.
저녁엔 <감리업무수행지침서 해설> 특강의 마지막 시간이 진행됐다.
교육이 어느덧 절반을 넘긴 지금, 이론이 조금씩 머리에 자리를 잡아가는 게 느껴진다.
그런데 오늘 저녁, 분위기가 다소 무거워졌다.
생활관 규율이 한층 강화됐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13일, OO회사 소속 교육생이 외출 중 다방에서
종업원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말다툼이 커지며 신체접촉까지 이어졌고,
경찰이 출동하고, 합의금이 천만 원이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퇴교나 유급 조치가 내려질 수 있다는 말도 들렸다.
우리 교육생들은 해당 교육생을 선처해달라며 서명운동을 벌였지만,
결국 이 사건과 지난 음주 소란 사건까지 포함해
교육원 직원 6명이 징계조치를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는 전원 대졸 이상의 인재들로 기대를 모았던 ‘제1기 초급감리원’이었는데,
날이 갈수록 방종해지고 있다는 자성이 필요하다.
좋은 이미지를 남기기 위해서는,
기술적 성숙 이전에 태도와 품격을 먼저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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