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 12월 12일 (일) / 날씨 : 맑음
짧은 귀향, 다시 돌아오다
시골집에 하룻밤을 묵고,
아침 일찍 부모님이 들일 나가시는 모습을 보며
마음 한켠 미안함을 숨긴 채
조용히 집을 나섰다.
구미로 향해 학교에 들렀다.
방학이라 캠퍼스는 썰렁했지만
대자보 게시판은 구호로 빼곡했고,
본관 입구에도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얼마 전,
차기 총학생회장과 부회장 등
차기 집행부 간부들이 퇴학 처분을 받은 것에 대한
항의 시위가 있었다고 했다.
본관에서는 단식농성도 벌어지는 중이라고 한다.
학교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돌이켜보면 그간의 대학생활은
학내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통일운동 등의 시위에
자주 참여해 왔고, 그만큼 개인적인 학업은 많이 소홀해졌다.
이제 그만 멈추자.
이런 일들은 취업 후에도 언제든 다시 참여할 수 있는 일이다.
당장은 잠시 내려두고,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근처 이발관에 들러 단정하게 머리를 정리한 후,
오후 1시 24분발 통일호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남대문 시장에 들러 츄리닝 바지와 내복을 하나씩 샀다.
그리고 다시 인천 교육원으로 돌아왔다.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 휴일에도 잔류해 있던
동의대 김현성씨와 경북대 김현철씨를 위해
위로 겸해서 맥주 두 병과 과자 한 봉지를 사 들고 숙소로 들어갔다.
둘 다 며칠 동안 쓸쓸했는지 나를 정말 반가워했다.
방 안에 들어가 잔을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취침 시간이 가까워지자 건국대 김홍문씨도 돌아왔고,
잠시 뒤엔 순천대 류민광씨도 돌아왔다.
나 역시 하루 종일 서서 기차를 탔기에
몸은 몹시 피곤했지만,
좋은 방 친구들과 함께 있으니 마음은 따뜻했다.
내일부터는
다시 까다로운 수업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성과가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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