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 12월 19일 (일) / 날씨: 맑음
서울, 그 반짝이는 도시 속에서 느낀 작고 조용한 초라함
오전 내내 군 시절의 추억을 일기에 담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점심시간도 잊은 채 TV실에 있었는데, 오후 1시 정전이 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는 정말로 정각 1시에 전기가 꺼졌다. 그제야 점심을 먹지 않은 걸 깨닫고 부랴부랴 식당으로 달려갔다.
배식은 이미 끝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도 식당 아주머니가 따뜻하게 챙겨 주셔서 겨우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공사 관계로 오후 4시까지 정전이 지속된다기에, 서울 시내를 나가보기로 했다.
목적지는 잠실 롯데월드.
시청역에서 2호선 순환열차를 타고 잠실역에 도착하자,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이 펼쳐졌다.
넓은 지하공간과 백화점, 실내 아이스링크, 민속관, 그리고 외부로 나가자 궁전처럼 생긴 환상의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놀라움과 경이로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사람들은 자유롭고 여유로워 보였고, 놀이기구엔 웃음과 환호가 넘쳐났다.
그러나 나는... 입장료 5천 원이 없어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하고 밖에서 바라만 보았다.
3층 유리창 너머로 보인 풍경은 그야말로 천국의 모형 같았다.
공중을 떠다니는 자기 부상열차, 물길을 따라 떠다니는 배,
환상의 옷을 입고 퍼레이드를 벌이는 사람들,
움직이는 인형과 풍차, 굴 속의 사람들까지—모든 것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 찬란한 세상 바깥에서
나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기만 하는 존재였다.
내 손에 들려 있던 건 입장권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부러움과 약간의 초라함이었다.
서울은 반짝였고, 나는 그 빛을 멀리서 바라만 보았다.
그렇게 전철을 타고, 다시 인천 교육원으로 돌아왔다.
'7. 복원일기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원일기] '93.12.21. - 기술은 겸손에서, 뿌리는 나를 일으킨다 (0) | 2025.05.24 |
---|---|
[복원일기] '93.12.20. - 작아진 마음, 묻어둔 다짐 (0) | 2025.05.24 |
[복원일기] '93.12.18. - 군 시절의 기억 속에서, 다시 나를 찾다 (0) | 2025.05.24 |
[복원일기] '93.12.17. - 나는 보람 있게 살고 있는가? (0) | 2025.05.24 |
[복원일기] '93.12.16. - 흰눈과 마음 뒤숭생숭한 하루 (0) | 2025.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