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기술자의 판단에 대하여
최근 시공사부터 수로암거 최소 규격(2.5×1.5)의 시스템동바리에 대해 구조계산서와 시공상세도가 함께 제출돼, 이 건의 적정성을 검토한 적이 있다. 이 건은 구조물의 규모에 비해 과도하게 수직/수평재가 조밀하고, 가새재까지 촘촘하게 배치돼 있었다.
현장의 시공성과 작업공간 확보 측면에서, 매우 비효율적인 배치이다. 현실적으로도 시공 적용이 불가능하다 판단되었다. 수로암거 내공 높이가 보통 성인의 키 보다 낮은 1.5m 밖에 안되는 여건이다. 높이가 너무 낮아 시스템동바리 설치/해체 작업을 하려면 사람이 기어 들어가서 작업해야 한다. 이런 상태라면 오히려 구조적 안전성과 작업자의 안전 위험성을 더 증가시키게 된다. 작업자의 근골격계 안전을 위협할 것은 물론이고 동바리 부재의 수정 작업이 요구될 경우에도 틈이 없어 조치 불가능할 것이 예건되기 때문이다.(수로암거 내공높이는 최소 2m 이상 적용 바람직)
그래서 나는 판단했다. 수직재 간격을 늘리고, 가새재를 전면 생략하자.
대신 구조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현실적인 모델링을 통해 검증해보면 되니깐...아래와 같이 수정안을 잡았다.
별도 구조해석 모델링 작성
- 수직재 간격을 종방향 914mm → 1219mm로 확대했다.
- (수직재 1본당 분담면적 : 914x914 → 914x1,219)
- 모든 가새재를 생략했다. 제출된 시공상세도는 비규격품 단관파이프를 잘라 일일이 클램프로 채우도록 계획됐다.
→ 내공 높이가 낮아 수평재 상/하단높이가 430mm에 불과하다. 이런 부재에 무슨 좌굴이 생긴단 말인가. - 합판과 장선을 받치는 멍에재(125×75×3.2t)는 실제 단면으로 모델링했다.
- 합판거푸집은 더미 plate 요소로, 하중은 Pressure Load로 입력하고, 수직재 상단 수평하중은 Point Load로 재하했다.
- 경계조건은 수직재 하단 (1,1,1,0,0,0), 합판 끝단은 유로폼 지지 조건 반영 (0,0,1,0,0,0).
- 수직재와 수평재가 만나는 부재의 연결조건은 Beam and Relese 기능으로 힌지 처리 (My, Mz = 미소강성 0.000001 부여)
- 구조해석 프로그램 : Midas-civil
그 결과는? 당연히 모든 부재가 OK이다.
불필요한 가새재를 삭제하고 수직재 간격을 넓혀도 허용응력 대비 여유가 충분해 구조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
시공계획이 얼마나 무성의하게 작성되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간 가설재 업체(혹은 시공중 안전성 검토 용역자)가 작성한 시스템동바리 구조계산서와 시공상세도를 검토할때마다 너무 한심해서 혀를 내두르곤 했다.
오직 구색 맞추기식 부실한 검토는 비용을 낭비하고 시간을 낭비한다.
나는 한때 어느 현장의 책임감리단장을 맡았을 때, 수로암거(2.0×2.0) 동바리 구조 검토를 생략한 채 시공 진행을 승인해준 적도 있다. 단순히 ‘귀찮아서’가 아니라, 이와 같은 소규모 구조물에 사용되는 가설재는 구조계산을 해보나마나 구조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을 그 간의 경험칙으로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세심한 검토를 하더라도 부재규격과 배치간격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시공할 규격의 구조물은 작았고, 시공사 여건은 열악했다. 구조계산 외주를 맡기면 시간도, 비용도 들고, 돌고 돌아올 그 구조계산서는 결국 내가 그린 스케치 한 장만도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소장에게 말했다.
“이런 소규모 암거는 시스템동바리 구조계산서 따위 필요 없으니, 이 스케치대로 시공하시오. 책임은 내가 질테니....”
그렇게 즉석에서 결정한 뒤 스케치대로 동바리를 설치한 후 타설을 진행했으며, 실제로 아무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임기술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이 총대를 매고 책임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조계산서를 요구하고, 형식적으로라도 OK 사인을 남기고, 그 책임을 서류에 넘겨버리는 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는, 하나마나한 구조 검토에 시간과 경비를 남발하지 않고 더 중요한, 진짜 꼭 필요한 검토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요식적인 구조계산서보다 더 중요한 구조적 직관과 책임 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계산서를 생략할 수 있는 사람은, 그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자기 책임 하에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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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5.05.29.
📎 작성자: 불꽃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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