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 12월 9일 (목) / 날씨 : 맑음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다
오늘은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수업 내용도 집중도도
모두 부실했던 하루였다.
오전 1, 2교시는
한국해외기술공사 회장님이
우리 건설인들의 마음가짐과
부실공사 추방을 위한 감리원들의 역할에 대해
열띤 강의를 해주셨다.
3, 4교시는 영화 상영.
대강당에서 합동 수업으로 진행되었기에
출석 체크에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며칠 전 신문에서 보았던
㈜유신설계공단의 신입사원 모집공고가 문득 떠올랐다.
망설일 필요 없이, 마음먹은 김에 원서를 내보기로 결심했다.
학생과를 찾아가 재원증명서를 발급받은 뒤,
오후 수업을 빠지고 곧장 서울로 향했다.
지하철 2호선 역삼역에 내려
유신빌딩을 찾아 나섰지만,
서울 지리에 익숙지 않아
한참을 헤매다 결국
회사 위치를 찾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수업도 빠지고, 저녁도 거르고, 교통비까지 들였건만
기분은 엉망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언젠가, 이 회사에 꼭 입사하리라.
단 한달 근무하는 조건이더라도 반드시"
(※ 8년 후, 나는 결국 이 회사에 입사했다.
그래서 지금 돌아보면
이 헛걸음도 쓸데없는 낭비만은 아니었다.)
저녁 특강 시간에는
한 시간 정도가 지난 뒤
뒤늦게 강의실에 도착했다.
강의는 한글학자 한갑수 선생님의 강의였다.
여든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굵고 우렁찬 목소리로
우리 한글의 위대함과 정체성에 대해
강하게 전달해 주셨다.
“우리나라에 이런 분이 계시기 때문에
역사는 튼튼히 이어지는 것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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