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감성 사이, 그 어느 다리위에서...

7. 복원일기장

[복원일기] '93.12.04. - 첫 주말, 혼자라는 시간과 마주하다

불꽃엔지니어 2025. 5. 19. 11:00

📘 1993년 12월 4일 (토) / 날씨 : 맑음

 

건설기술교육원에서의 첫 주말을 맞다

오늘은 입교 후 첫 번째 평가를 받는 날이자,
첫 외박이 허용되는 날이다.


오전 1, 2교시는
<품질관리> 강의를 안영기 강사님이 맡았다.
그는 공무원으로 다년간 현장 경험이 있었고,
시공기술사와 품질관리기술사를 취득한 사람이다.
현재는 책임감리회사의 대표이자
한국건설품질관리연구원 이사장직도 맡고 있다.


그는 고병우 건설부장관과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감리제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즉,
“초급 감리원들이 현장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감리전문회사가 과연 정착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에 대해
낙관적인 입장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바뀐 감리제도는 반드시 성공해야 하며,
초급 감리원들은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
는 점을 강하게 강조했다.


부실공사 방지의 한 축으로
품질관리적 접근을 시도한 이 강의는
실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3교시에는 305 강의실에서
주말 평가가 있었다.

애초에는 이번 주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객관식 시험을 본다는 계획이었지만
계획이 변경되어 주관식 시험으로 바뀌었다.

  1. 초급 감리요원으로서의 각오
  2. 건설분야에서 가장 관심 있는 부분
    두 문제 중 하나를 선택해 작성하는 방식이었다.

글쓰기에 어느 정도 자신(?) 있는 나로선
반가운 시험이었다.

평소 생각해 오던 바와
입교 후 들은 수업 내용을 엮어 써 내려갔다.

8절지 앞면을 모두 채우고,
뒷면의 1/3쯤을 더 써내려가니
시간이 다 되어 서둘러 펜을 놓았다.

주관식임에도 다들 열심히 적는 걸 보니
문제가 적절했던 모양이다.

시험이긴 해서 약간 떨렸고,
문장이 다소 어색하게 구성된 게 아쉬웠다.

 

시험이 끝나고 점심을 먹은 뒤 생활관으로 들어오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외박 준비로 분주했다.
마치 군 시절, 첫 외박을 나가는 듯한
설렘과 흥분이 공간을 감쌌다.

나도 덩달아 짐을 챙기고 정리했다.

 

나가는 길에
서울대 출신 김형돈 씨와
그의 대학 선배 한 사람과 함께
밖으로 나가 2번 마을버스를 탔다.

김형돈 씨는 버스로 얼마 안 가 바로 내렸다.
(집이 인천이라 가까웠다)

 

나는 영등포역에 도착해
고향집으로 내려가는 기차표를 사려 했지만
원하는 시간대는 모두 매진,
입석마저도 없었다.

기차를 타도
도중에 계속 서서 가야 하고,
시골집에 도착할 무렵이면
버스도 끊길 시간이었기에
결국 내려가는 걸 포기했다.

돈을 아끼는 게 낫겠다는 판단에
다시 인천 교육원으로 향했다.

 

돌아와 잔류자 명단에 이름을 적고
생활관에서 TV를 시청했다.

외박을 안 나가고 남은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
우리 룸메이트들은 전원 외박 나갔다.
방이 텅 비어 적막감이 감돌았다.

 

혼자라는 것,
그건 정말 외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친구가 소중하고,
대인관계가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신문을 보다가,
TV를 보다가,
안절부절못할 지경이었다.

취업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 와중에도
SBS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잠시 마음을 달랬고,
수업 내용을 복습했다.

동료들이 있으면
눈치가 보여 제대로 못했을 텐데,
문을 잠그고 편하게 공부하니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지금 이 일기를 쓰는 이 순간도
혼자이고,
아마도 내일 저녁까지는 계속 혼자일 것 같다.

내일 오전,
인천 앞바다에 한번 가봐야겠다.
여태껏 서해 바다를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나저나 내 인생의 모든 것이
잘 풀려야 할 텐데…

가족들이 보고 싶다.
아버지, 어머니, 두 동생들…

막내 동생이
“형아~”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우리 가족에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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