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 12월 2일 (목) / 날씨 : 맑음
오늘, 가슴이 뜨거워진 날
오전 1, 2, 3교시 수업은
인하대 구민세 교수님의 <강구조> 강의였다.
딱딱한 과목이라 생각했지만,
우리가 너무 쉽게 지나쳐온 구조해석의 오류를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하나하나 짚어주셨다.
그 설명 하나하나가
내게는 깊은 각성과 자극의 계기가 되었다.
오후 4, 5교시는
건설진흥공단 이사이자 NATM 시공의 산증인,
임영국 강사님의 강의였다.
무려 33년간 현장에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NATM 공법의 국내 도입과 그 적응의 여정을
열정 가득한 목소리로 전해주셨다.
일제강점기 이후 침목 방식 일색이었던 터널 굴착공사에
NATM 공법을 들여와 뿌리내리기까지의 과정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는 <NATM 공법>, <알기 쉬운 터널역학>이라는
자신의 책을 언급하며
이 기술이 단순한 공법이 아니라,
현장의 생명과도 같은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던 중, 그는
군사정부 시절 이후 시공된 구조물들의 부실함을 개탄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속도로 건설 당시의 토목공사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건설단 장교들이 권총을 차고 공기를 재촉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런 강압된 분위기 속에서, 부실공사를 묵인한 기술자들도 많았습니다.
그 부작용으로, 경부고속도로는 개통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끊임없는 보수와 보강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는 이 말을 끝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모를 감정의 떨림이 전해졌다.
“해외건설에서는 잘하면서,
정작 국내 건설공사에서는 부실하게 지어
썩어가는 교량을 남기고 말았네요...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유산을 남긴 것 같아,
정말 미안합니다.”
그 순간,
나는 말없이 고개를 떨군 채
가슴 한켠이 묵직해졌다.
그가 이 나라의 부실공사를 막기 위해
얼마나 긴 시간 치열하게 버텨왔는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도,
그분의 개탄과 회한처럼
부실과 타협하지 않는 기술인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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