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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불꽃의시선

'건설사업관리'라 적고, '감리'라 부른다?

불꽃엔지니어 2025. 6. 24. 09:53

'건설사업관리'라 적고, '감리'라 부른다?

어느 순간부터 ‘감리’라는 말이 공문서에서 자취를 감췄다. 대신 ‘건설사업관리’라는 긴 이름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감리단'은 '건설사업관리단'으로, ‘감리원’은 ‘건설사업관리 기술자’를 거쳐, 지금은 ‘건설사업관리 기술인’으로 명명됐다. ‘책임감리단장’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책임건설사업 기술인’이라는 이름으로 공문서에 적힌다. 매우 어색하지만, 제도상 그렇게 써야 한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여전히 ‘감리’라고 부른다. 제도상 명칭이 바뀐 지 어언 10년이 지났지만, 손에도, 입에도 익지 않는다. ‘건설사업관리’는 글자 수는 많고, 발음도 어색하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감리단”, “감리원”이라 부른다. 그게 더 자연스럽고 실감난다. 심지어 발주처 직원들도, 감사원 감사관도, 국회의원들조차도 ‘감리’라고 말한다. ‘건설사업관리’라는 말은 공문서 속에만 있고, 사람들 입에는 없다.
 
문서 속 표현은 바뀌었지만, 사람들의 말은 그대로다. 남아 있는 말은 살아 있는 것이다.  두 글자 ‘감리’ 속에는 많은 의미가 응축돼 있다. 감독하고 관리한다는 뜻을 넘어, 설계와 시공, 품질과 안전까지 두루 살피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감리’는 단순한 직무가 아닌, 현장과 제도적 정서에 녹아 있는 이름이다.
 
'감리’라는 용어는 1987년 10월 24일 「건설기술관리법」 제정과 함께 도입되었다. 반면 ‘건설사업관리’라는 용어는 2014년 「건설기술진흥법」 제정 당시 제도 정비의 일환으로 도입된 표현이다. 붕괴사고로 인한 급작스러운 대체가 아니었다. 단지 법령 정비 과정에서, 역할을 포괄하는 새로운 표현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감리’라는 명칭이 제도 밖으로 밀려난 것이다.
 
하지만 건축법과 주택법은 지금도 ‘감리’라는 표현을 그대로 쓰고 있다. 이 단어가 그 직무의 본질을 가장 정확히 담고 있기 때문에, 이를 대체할 더 나은 표현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현장에서 “책임건설사업관리기술인”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다. 공문서엔 그렇게 적혀 있어도, 입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이름은 길고 낯설며, 무엇보다 역할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감리’는 한자로 ‘감(監, 살핀다)’과 ‘리(理, 다스린다)’로 이루어져 있다. 건설 용어로서도 ‘공사나 설계 등에서 일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감독하고 관리하는 것’을 뜻한다. 즉, 단순히 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검토하고 확인하며, 지도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이 정체성을 가장 잘 담고 있는 단어가 바로 ‘감리’다.
   
이제는 다시 한번 점검해볼 때다. ‘감리’는 여전히 널리 불리는 고유명사이자, 그 직무의 본질을 가장 정확히 설명하는 단어다. 제도가 언어를 이끌어갈 수도 있지만, 때로는 현장의 언어가 제도의 방향을 되돌리는 법이다.
 
실용정부를 표방한 이재명 정부 들어, 이제는 말만 번지르르하고 실효성 없는 그간의 용어들을 현실에 맞게 바로잡아야 한다. 불필요하게 길어진 표현, 직무의 실체와 멀어진 언어, 혼란만 남긴 제도적 이름들을 이제는 현실의 언어로 되돌릴 때다.
 
by 불꽃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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