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감성 사이, 그 어느 다리위에서...

5. 불꽃의시선

“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였소이다”

불꽃엔지니어 2025. 6. 21. 14:17

— 이름을 말하지 못했던 존재들의 구조적 침묵

1. 익숙한 그 문장, 그러나 무거운 울림

『홍길동전』은 고전이라기보다
언어의 억압을 절절히 드러낸 구조문학이다.

“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였소이다.”

 

이 말 한 줄엔 단순한 신분 차별을 넘어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존재의 통증이 있다.
불릴 수 없다는 건, 존재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2. 우리는 '대한민국'이라 부르지 못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나라를, 우리가 지은 이름으로 부르지 못했다.

  • Korea는 고려의 그림자였고,
  • 불란서는 프랑스를 불로 시작해 버린 기형이었고,
  • 미국·독일·호주는 우리 말이 아니라,
    타인의 언어를 필터 삼아 받아 적은 이름이었다.

우리는 나라를 나라라 말하지 못했고,
말할 수 없었던 시절을 관성처럼 지금도 안고 살아간다.

3. 언어는 구조고, 구조는 권력이다

누군가 이름을 붙인다.
그것이 구조를 만든다.
그리고 구조는 권력을 형성한다.

말할 수 없게 만든다.
혹은, 말하게 하되
정해진 말만 하게 만든다.

우리는 과거,
그 정해진 이름의 질서 속에서
스스로를 설명할 수 없는 국민이었다.

4. 이름을 말할 수 없었던 존재들

  • 100달러를 ‘불’이라 불렀고,
  • 프랑스를 ‘불란서’라 불렀으며,
  • Deutschland를 ‘독일’이라 불렀다.

모두 그들 스스로의 이름이 아니라,
외부의 발음과 권위에 맞춰 억지로 붙인 이름
이었다.

그건 홍길동이 아버지를 부르지 못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5. 불꽃의 시선

이 시리즈는 나라 이름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그 끝에는 말의 구조와 기억, 존재의 선언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였소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나라를 우리 말로 부르지 못했던 시절 속에 있었다.

 

이제 우리는 말할 수 있다.
대한민국을 대한민국이라.
프랑스를 프랑스라.
달러를 달러라.

말은 회복된다.
그리고 구조는 다시 세워진다.

 

이름을 바로 부르는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말의 정체성을 되찾는 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존엄의 회복이다.

말은 존재의 가장 작은 단위이자
가장 단단한 선언이니까.

 

사진출처 : TvN 벌거벗은 한국사 화면 캡쳐 https://www.youtube.com/watch?v=aC6uAEhjqwM

본 글과 사진 이미지는 무관합니다.


by 불꽃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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